- base 상품 : 160상품
- 가족 구성원 : 누나
- 조문객 : 일가 친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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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끼리만 장례를 치르고 싶은데 그렇게 할 수 있나요?"
부적이나 이런 질문들이 많아지는 요즘입니다.
이번에 연락을 주셨던 상주님도 조문객을 부르지 않고 가족끼리 소규모 장례를 치르고자 문의를 주셨습니다.
사전 문의로 3번 정도 통화를 했던
50대 초반의 고객님이었고 남동생 장례식에 빈소를 차릴지 말지에 대한 고민으로 여러 번 상담을 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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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빈소 장례식의 이유는
아우는 자식이 없고 사별 후 혼자 삶을 사셨다고 했습니다. 형제들에게 금전적 부담을 주기 싫어 잠자듯 조용히 떠나고 싶다는 말씀도 종종 하셨다고 합니다.
조문 와주실 분들도 거의 없을 것 같고, 그래서 무빈소 장례식을 선택하시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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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 후 조치
요양병원에서 임종 소식을 통보받은 큰 형님께서 바로 연락을 주셨습니다.
간혹혹 무빈소 장례식을 거부하는 장례식장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안치실 예약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안치실 여유가 많은 대형 장례식장이 오히려 무빈소 장례식을 진행하기에 더 좋을 때가 많습니다.
이번 진행도 안치실 여유가 많아 무빈소 장례식을 진행하기 편한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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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의 아버지도 참석
입관식이 있는 이튿날 새벽, 출근 꽃 시장에 들러 형형색색 화사하게 피어난 생화를 한 아름 구입했습니다.
바삐 걸음을 재촉하여 장례식장에 출근한 뒤 바로 입관식 준비에 들어갑니다.
꽃 한 송이 한송이 줄기와 잎을 깔끔하게 다듬고 유택과 이불을 화려하게 꾸며 드리니 그야말로 꽃밭이 따로 없었습니다.
고인께서는 임종 직전까지 병환으로 고생하시다 돌아가신 터라 아직도 얼굴 곳곳에 그 흔적이 남아있는 상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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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생존해 있는 고인의 아버지도 참석하는 입관식이었습니다.
아들의 수척해진 모습을 보여드리면 아버지 마음도 더욱 무거워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안색을 조금이나마 밝혀드리며 더 환하고 밝은 분위기에서 염습 절차를 진행해 드렸습니다.
”아들아.. 엄마 옆으로 가거라..."
“훨훨 날며 살거라...”
“곧 가서 다시 만나자...”
자식을 떠나보내는 아버지의 마음은 어떨까요.
.가슴이 무너지는 듯한 마음일까요.. 상상할 수도 없는 슬픔에 저 또한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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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장과 자연장
큰 형님은 유골함에 담겨 나온 동생의 유해를 꼭 끌어안고 마지막 목적지인 양평 갈월공원 수목장으로 향했습니다.
조금 쌀쌀한 날씨였지만 막힌 곳 하나 없이 탁 트인 풍경에 솔솔 불어오는 바람까지 풍경은 너무나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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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절차를 진행하기 전 누나분께서 잠깐만 시간을 내어달라고 요청하셔서 한 발자국 떨어져 잠시 기다렸습니다.
작게 떨리는 어깨 넘어에는 많은 사연과 눈물이 가득해 보였습니다.
여러 사정상 빈소없는 장례식을 진행했지만 더 예쁜 이별식이 되었기를 바라며 진행 글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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